보이차

보이차의 전설적인 브랜드, 동경호(同庆号)의 역사

보이차 애호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동경호(同庆号). 이 브랜드는 “온 세상이 함께 경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청나라 시대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보이차 상표입니다. 이 글에서는 동경호의 탄생과 흥망성쇠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동경호의 탄생과 발전

옹정 2년(1724년) – 창립

동경호의 창시자인 **유한성(刘汉成)**은 석평(石屏)에서 **”동경호(同庆号)”**라는 상호를 걸고 차 무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이름은 **”이무 석평 동경호(易武石屏同庆号)”**였으며, 이후 보이차의 주요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됩니다.

건륭 원년(1736년) – 품질 혁신

유한성은 보이차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6선 6기(六选六弃)” 기준을 도입하였습니다.

  • 6선(六选, 여섯 가지 선별 기준)
    1. 봄차(春茶) 선별
    2. 어린 싹(嫩尖) 선별
    3. 좋은 생산지(产地) 선별
    4. 깨끗한 차(净度) 선별
    5. 좋은 맛(滋味) 선별
    6. 우수한 향기(香气) 선별
  • 6기(六弃, 여섯 가지 배제 기준)
    1. 거친 잎과 노엽(粗老) 배제
    2. 맛이 떨어지는 차(味劣) 배제
    3. 깨끗하지 않은 차(不洁) 배제
    4. 이물질이 섞인 차(杂物) 배제
    5. 이상한 냄새가 나는 차(异味) 배제
    6. 품질이 변한 차(质变) 배제

이러한 엄격한 기준 덕분에 동경호의 보이차는 품질이 뛰어나고 명성이 높아졌으며,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광서 30년(1904년) – 최초의 상표 등록

청나라 상부(商部)가 《상표 등록 시범 조례(商标注册试办章程)》 및 **《상표 등록 세부 규정(商标注册细目)》**을 발표하자, 동경호는 이를 기반으로 청나라 정부에 “동경호” 상표 등록을 신청하였습니다.

이때 **최초로 등록된 상표가 “용마(龙马) 도안”**이었으며, 이 마크는 후에 동경호의 상징적인 상표가 됩니다.

민국 4년(1915년) – 전성기

이 시기에 동경호는 서쌍판납(西双版纳)에서 가장 큰 보이차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민국 9년(1920년) – 상표 변경

동경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위조 제품이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북양정부(北洋政府)에 상표 변경을 신청하여 “쌍사기(双狮旗, 두 마리 사자가 그려진 깃발)” 도안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차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용마(龙马) 도안이 사용된 차를 “용마 동경호 보이차(龙马同庆号普洱茶)”로 부르며, 최소 90년 이상의 숙성을 거친 매우 귀중한 차로 평가합니다.

동경호의 쇠퇴

1937년 – 일본군 침략과 보이차 유통 차단

중일전쟁(1937~1945년)이 발발하면서 보이차의 북방 시장(베이징, 톈진 등)이 막혔습니다.

1941년 – 태평양 전쟁과 남방 수출길 차단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군이 동남아를 점령하면서, 보이차의 주요 수출 경로(홍콩, 동남아 등)도 막히게 되었습니다.

1948년 – 폐업

전쟁과 혼란 속에서 동경호 차장은 점점 쇠락하였고, 1948년 결국 완전히 폐업하게 되었습니다.

약 2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던 동경호는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결론

동경호는 단순한 차 브랜드가 아니라, 청나라부터 이어진 보이차 명문의 역사입니다. 비록 오늘날 동경호의 명맥은 단절되었지만, 그 유산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수집가들에게 **용마 동경호 보이차(龙马同庆号普洱茶)**는 희귀하고 가치 있는 차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보이차의 역사 속에서 동경호가 남긴 발자취는 여전히 빛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유산을 기억하며 보이차의 깊은 맛과 문화를 더욱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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