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시간을 담은 보물, 보이차 “호급차”의 놀라운 가치

차 한 잔이 이토록 깊은 시간을 품을 수 있을까요?

보이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수십 년, 혹은 백 년이 넘는 시간을 응축한 “마시는 역사”입니다.
그 중에서도 ‘호급차(號級茶)’는 고급 보이차의 상징이자, 수집가들과 애호가들에게는 꿈의 존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갓 만들어졌을 때의 날카로운 기운부터, 숙성을 거치며 은은하고 부드러워지는 그 변화의 여정은 마치 한 사람의 인생처럼 느껴집니다.
젊을 땐 날이 서 있고, 시간이 지나며 점점 원숙해지며, 마침내는 평온과 안정을 지니게 되는 것처럼요.


숙성될수록 빛나는 보이차, 그 대표 주자 ‘88청병’

보이차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집니다.
그 어떤 차보다도 숙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 차이며, 시간이 만들어낸 가치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88청병(八八青餅)’**입니다.

이 차는 1988년, 중국 운남 맹해차창(勐海茶廠)에서 생산된 보이생차로, 뛰어난 품질과 숙성 잠재력 덕분에 현재 경매 시장에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전설이 된 경매 기록

2020년 중국 가을 경매회에서는 88청병 2통(총 14편)이 무려 172만 5천 위안에 낙찰되었는데,
이는 한화 약 3억 3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초기에는 **한 편당 7.8 홍콩달러(약 1,400원)**에 불과했던 이 차는 현재 **한 편당 12만 3천 홍콩달러(약 2,160만 원)**까지 뛰어올랐습니다.

2024년 봄 홍콩 스매스 옥션에서도 또 다른 88청병들이 각각 90만 홍콩달러(약 1억 5,800만 원),
그리고 **85만 홍콩달러(약 1억 4,900만 원)**에 낙찰되며 기록을 다시 썼습니다.

이러한 경매 성과는 보이차, 특히 오래된 ‘호급차’가 단순한 차가 아닌 수장(收藏) 가치가 높은 자산임을 입증합니다.




보이차 산업의 발전 3단계: 호급차, 인급차, 칠자병차

보이차의 역사적 흐름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1. 호급차 (號級茶)

청나라 말기, 운남 지역의 민간 차 상인들이 자신들의 브랜드인 ‘호(號)’를 붙여 만든 차입니다.
대표적인 호급차 브랜드로는 송빙호(宋聘號), 동경호(同慶號), 복원창(福元昌) 등이 있으며, 이들은 현재 골동차로 분류되어 높은 수장 가치를 지닙니다.

2. 인급차 (印級茶)

1950년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차엽공사(中茶公司)**가 통일된 규격으로 생산한 보이차입니다.
‘중차패원차(中茶牌圓茶)’라는 문구가 포장지에 인쇄된 것이 특징입니다.

3. 칠자병차 (七子餅茶)

1960~1970년대, 보다 체계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진 시기로, 포장지에는 ‘운남칠자병(雲南七子餅)’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대표 차품으로는 맹해차창의 7542, 7572하관차창의 8653, 8633 등이 있습니다.




황실 공차(貢茶)로서의 유산

호급차의 가치는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보이차가 황실에 진상되던 공차였다는 점이 그 가치를 더욱 높여줍니다.

📜 황실의 사랑을 받은 보이차

명청 시대, 운남의 보이차는 점차 궁궐에 진상되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강희제 시대에는 지방 관리들이 보이차를 조정에 바치기 시작했고, 이는 곧 황실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신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옹정 7년(1729년), 운남총독 **악이태(鄂爾泰)**는 ‘개토귀류(改土歸流)’ 정책을 시행하며 보이부를 설치, 보이차 매매를 통제했고
정기적으로 품질 좋은 차를 선별하여 황실에 진상하게 했습니다.

《공차안책(貢茶案冊)》이라는 문서에는 공차의 종류와 규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팔색공차(八色貢茶)’로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차들이 진상되었습니다.

이처럼 호급차는 단순한 민간 차가 아니라, 역사적 신분을 지닌 차입니다.




고육대차산과 복원창(福元昌)의 전설

보이차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고육대차산(古六大茶山)**입니다.

• 이무(易武), 의방(倚邦), 만전(蠻磚), 혁등(革登), 망지(莽枝), 유락(攸樂)
이 여섯 지역은 전통적으로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호급차의 본산이기도 합니다.

이무 지역에서는 수많은 상호가 차를 생산했고, 그중에서도 **복원창호(福元昌號)**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복원창은 당시 의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보이차 상호였으며, 이곳에서 만든 차는 보이차의 기준점으로 여겨집니다.

후에 여복생(余福生)이 이 오래된 상호를 이어받아 이무로 옮기며, 지금의 복원창호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오늘날 복원창에서 생산된 차는 단순한 차 그 이상으로, 역사적 사료이자 문화적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숙성과 고화(膏化), 오래된 차가 가진 비밀

오래된 보이차, 특히 호급차는 외형에서부터 다른 차들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집니다.

• 찻잎의 모양이 온전하고, 잎이 두껍고 탄력 있음

• 수십 년이 지나도 15번 이상 우려낼 수 있음

• 오래될수록 잎은 얇아지고, 매미 날개처럼 반투명해지는 현상

이것은 바로 고화(膏化) 현상 때문입니다.
이는 보이차가 숙성 과정에서 혐기성 발효를 거치며 폴리페놀 성분이 분해되고, 미생물과 효소 작용으로 유익한 물질로 전환되는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이 때문에 오래된 보이차는 맛이 더 부드럽고 깊어지며, 차탕은 밤색을 띠고, 기운은 온몸을 따뜻하게 감쌉니다.
이러한 이유로, 호급차는 “보이차의 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전설은 마시는 것이 아닌, 경험하는 것

오늘날 호급차는 단지 차의 맛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브랜드의 전통, 차를 만든 장인의 손길, 시대의 역사, 황실의 품격까지 녹아 있습니다.

실제로 마셔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그 가치가 축적되는 것입니다.
차 한 편이 곧 문화이고, 역사이며, 인간의 시간에 대한 존경이기도 한 셈이죠.

보이차는 마시는 사람들의 마지막 종착지이고,
시간은 붙잡을 수 없기에 우리는 그 과정을 즐기면 됩니다.




마무리

보이차의 세계는 광대하지만, 그 속에서 ‘호급차’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시간의 깊이와 차의 여운을 경험하고 싶다면, 보이차는 그 여정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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